용서하면 삽시다 요약(마18:21-22)
첫째, 용서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가운데 `하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뜻은 "가엾게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아끼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습니다. `카파르`라는 단어의 뜻은 덮다. 라는 것입니다. 헬라어 단어가운데 `아폴뤼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놓아주다, 가게하다, 풀어주다, 보내버리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리조마이`라는 단어의 뜻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락하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용서의 성격이고 내용인 것입니다. 덮어주는 것, 풀어버리는 것, 이유도 까닭은 따지지 않고 허락해 주는 것이 용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스데반의 용서는 상대방이 자기의 잘못을 알고 뉘우치든 뉘우치지 않던 용서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인 것입니다.
둘째, 용서의 이유입니다.
1.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다음과 같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임금의 신하가 임금에게 1만 달란트 즉, 33억 원의 빚을 졌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찾아와서 형편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임금이 불쌍히 여겨 전액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탕감을 받은 감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다가 100데나리온, 약 2백만 원을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자 그에게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 동료가 "조금만 참아주소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갚겠습니다." 라고 조금 전의 자기 자신처럼 사정을 하는데도 그는 용서하지 않고 빨리 빚을 갚으라며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임금이 듣고 그 신하를 다시 불러서 말하기를 "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내게 진 빚을 갚을 때까지 옥졸에게 붙이겠노라" 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사랑하는 밀알가족들이여 왜 우리가 용서를 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용서 받았기에 용서해야 합니다.
2.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 것 같은데 아닙니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상대방은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미워하는 줄을 모릅니다. 어떤 의미에서 혼자서만 미워하고 살인합니다. 그 미움의 마음 한스러운 마음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겠습니까?
남에게 검은 것을 묻히려는 자는 자기가 먼저 검은 것을 묻히게 되는 것처럼, 용서하지 않았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하기에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축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용서는 의지적으로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가장 큰 방해요소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감정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실망과 좌절을 안겨주고 떠나간 그 사람을 어떻게 용서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하지만 출발은 나의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순간이라는 것을 아셨던 주님은 이 길만이 용서의 길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그분은 순종하고 계신 것 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무슨 의미지요? 그 분은 지금 순종하고 계신 것입니다. 순종은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용서 할 때는 느낌과 감정으로 접근하지 마십시오. 의지로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밀알가족 여러분이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첫 기도가 예수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한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