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근심과 영적근심 요약(고후7:8-16)
근심에는 두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육적인 근심과 영적인 근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근심과 영적인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곧 육신적인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염려란 말은 헬라 원에에 ‘메림나오’라는 말인데 그 뜻은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갈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인간을 약하게 하고 실패자로 만드는 무서운 악이요 신앙을 타락시키려는 원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밀알 가족 여러분!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영적인 근심은 우리가 해야 할 근심입니다. 그렇다면 영적근심은 무엇을 말합니까?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까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12-19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의 계속적인 이적과 은혜를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이에 화가 난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솟아나와 회중과 짐승이 먹으니라.” 모세가 교만했습니다. 물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결과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모세가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사실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교만으로 잘못될까봐 염려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무디어져 세상 염려 속에 살다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끊어지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의 영적상태를 염려해야 합니다.
둘째, 성도는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실제로 그 예를 보여 주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는 자기 분신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눈물로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책망을 많이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나서 후회하며 마음 아파했는데, 그 편지를 읽은 교인들이 회개하고 열심을 회복하여 교회가 더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오히려 구원을 이루게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근심해야 되는데 근심하지 않으면 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근심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으로 감동을 주어 회개하게 할 때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듣는 중에 ‘집사인 내가 이런 일을 하면 안 되는데……. 그런 곳에 가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은 오늘 이 시간에 근심하고 애통하는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세상근심은 복을 막아버리지만 영적금심은 회개를 이루어서 복을 받게 합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근심을 주께 믿음과 기도로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가지고 애통하며 바르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다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