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을 물리칩시다 (갈6:7-10)
오늘 바울 사도는 본문 9절에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사용한 낙심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마사스’(신 1:28)라고 하는데 의미는 ‘약해지다’, ‘약하다’, ‘녹다’, ‘용해시키다’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카코스”인데 이는 ‘무가치한’, ‘타락한’, ‘해로운’, ‘나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제1-2차 전도여행을 통해 갈라디아 지방에 교회들을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복음에 감격하던 갈라디아 성도들이 잘못된 교리를 수용하여 한때 십자가의 복음에 감격하던 성도들이 믿음을 버리고 무력감에 빠져있다는 보고를 받고 바울은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도 이런 마음으로 낙심하고 계신분이 있다면 본문은 낙심은 금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낙심이 금물일까요?
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고 좌절할 때 우리는 종종 아무도 내 편은 없다고 불평합니다. 어쩌면 하나님도 나와의 약속을 배신하셨다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나름 노력하고 기도했지만 결과가 뭐냐?”고 낙심하는 마음과 불평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그런 생각 자체가 실상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7절을 읽어보십시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으니 때가 차면 결론이 내려질 것이니 낙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십니다.
2. 성령으로 선한 것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뿌리고 심고 있습니다. 어제 하루를 살았다는 말은 우리가 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무엇인가를 뿌리고 심은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었으면 회개하면 되고 성령을 위하여 심았으면 기다리셔야 합니다.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추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분명 선한 씨앗을 심었다고 인정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아직 선한 결과를 보지 못했어도 주께서는 우리를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선한 동기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본문이 가르치는 마지막 이유가 있습니다.
3. 심은 것을 거두는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기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때가 있다”(전3:1)고 말합니다. 심은 때가 있으면 반드시 거둘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심음과 거둠의 법칙입니다. 추수의 법칙입니다. 이 심음과 거둠 사이에서 낙심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가치 있는 거둠일수록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시간을 인내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선한 노력이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좌절감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 기억할 말씀이 바로 본문 9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때가 이르면 무엇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거두리라”는 약속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낙심을 물리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