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겸손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사도 야고보가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로, 낮은 형제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여기서 낮다는 말은 "병 들다, 가난해 지다, 환난을 당한다." 등 이런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일컫는 말씀입니다.
또 자랑한다는 것은 교만의 마음에서 오는 불법적인 자랑이 아니고, 합법적인 것입니다. 지극히 큰 영적인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시대에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가 신처럼 떠받들림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나면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가이사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가이사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달랐습니다. "아니요! 우리의 주님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뿐이십니다."
이 신앙 때문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다 몰수당했습니다. 목숨도 빼앗겼습니다.
더러는 깊은 산 속으로 피난 갔습니다. 토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속에서 유리했습니다. 저들은 주를 위해서 낮아질 때로 낮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낮아짐으로 인해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높여주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를 위해서 우리 자신들을 낮출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부한 형제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10절 상반부입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여러분이여! 일반적으로 부한 사람들은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려고 하지 않고 수치로 여기며 더욱 부해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셋째 하늘로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광경을 자기의 두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말을 자기의 두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체험입니까?
그런데 바로 그 뒤에 그는 자기의 육체에 있는 가시로 인해서 고생스러워 합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내 육체에 있는 가시를 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에게 시험을 허락하셨는지, 자기 육체에 있는 가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가 놀라운 체험을 하고 나서 그것으로 인해 그가 자고하지 말고 모든 일에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그는 더 이상 자기의 육체에 있는 가시로 인해서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자기의 약해지고, 자기의 낮아짐을 오히려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약함을 자랑함으로 주의 은혜가 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세상적인 것들로 만족을 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세상적인 것들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까? 10절 하반부∼11절입니다.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세상적인 것들은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으로 바라보아야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 버릴 세상적인 것들로 삶의 목적을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