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시139:1-10)
이름은 누구에게나 아주 소중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좋은 의미로 알려지고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것처럼 고독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이름 석 자마저 초라 해보여 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남이 알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 소리 죽여 눈물을 삼킬 때도 있습니다. 누구도 내 아픔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 누구도 나의 슬픔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을 때 소리 없이 다가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 하나님은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첫째: 나의 이름을 아시고 나의 사정을 아십니다.
이 시간 그 분은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의 이름을 알고 있다. 내가 너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다 헤아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 이름의 의미는 ‘순결한 자’입니다. 그 부모는 순결한 삶을 살라고 좋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결하지 못합니다. 세리 장으로서 매국노, 죄인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삭개오는 늘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나도 저 분을 한 번 만나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볼 수 없기에 그는 돌 무화 과 나무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나무 밑에 서서 삭개오를 부릅니다. “삭개오야 속해 내려오너라.” 이것은 지금까지 삭개오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을 삭개오를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삭개오의 이름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한 번도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처음 보는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너희 집에서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둘째. 나의 생각과 말을 아시는 하나님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앉고 일어섬' 이라는 말은 삶의 모든 행위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삶... 앉는 것도 아시고 일어서는 것도 알고 계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어 살피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말을 아십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말을 하건 선한 말을 하건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말을 아십니다. 기도와 말씀의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말이 주님을 닮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나의 행동을 다 아십니다.
본문 2절 말씀에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라고 했는데, 여기서 앉는 것은 쉬는 것을 말하고, 일어서는 것은 일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쉬는 이유도 아시고, 일하는 이유도 아십니다. '나의 길과 눕는 것' 도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 나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