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깰 때입니다. (롬13:11-14)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자기가 붙잡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의미 없고 덧없는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하나님 없이 몸부림치며 살았던 자신의 모든 삶은 바람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인생이었음을 말합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서 우리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종말론적 삶이라고 말합니다. 종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죽음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은 주님께서 재림주로 오셔서 우주만물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이든 우주적인 종말이든 공통점은 그 때와 장소는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운명은 점점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종말의식을 잃었습니다. 죽음을 항상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나의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삶이 무기력해졌습니다. 천국 갈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신자처럼 삽니다. 불신자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불신자처럼 이 땅에 미련을 두고 삽니다. 때문에 성도들이 약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킨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 같이 세상이 아닌 천국을 소망했고 늘 종말론적인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교회를 말할 때마다 초대교회를 말합니다. 1세기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 생명력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소수의 사람들이었지만 로마를 복음 화시켰습니다. 도대체 그 생명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 - 종말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눈을 뜨며 "주여 오늘 오십니까?"라고 물었고 밤에 문을 닫으며 "이 밤에 오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늘 "마라나타" - "주께서 곧 다시 오십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마지막에 대한 긴박감이 있었습니다. 핍박이 오고 고난이 생겨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교회사를 보면 진지한 영적부흥과 도덕적인 각성이 일어난 시기는 한결같이 종말론적인 믿음운동이 일어나던 때입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불법이 성하므로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오늘 이 시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때가 분명 우리 가운데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13:11)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를 잘 분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바로 자다가 깰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야 할까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경은 무슨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 말씀을 읽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은 그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단정히 행하는 삶'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모습,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자세로 사는 모습, 이것이 바로 단정하게 사는 사람의 바른 모습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자다가 깰 때입니다. 준비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